로파멜 녹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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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브릭 스크린과 동시녹음 / 룸 스필 (블리드) 에 대하여

로파멜 2024. 9. 4. 19:03

동시녹음에 대한 문의를 생각보다 많이 받는 편이에요. 아무래도 합주하는 느낌 그대로 녹음하는 방식이 연주적인 측면에서 더 익숙할 수 있고, 굳이 클릭을 들으며 칼박으로 연주하고 어긋나는 것을 편집해 맞추려기보다는 더 프리하고 팀 고유의 템포감을 그리고 합주력을 소리로 담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클릭에 묶여 있지 않고 함께 연주해온 호흡을 그대로 담을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겠지요. 하지만 한 명이 삐끗하면 모두가 다시 해야하고, 모두가 만족하는 그런 세션이 딱 한방에 나오기가 힘들다는 어려움도 있고, 기술적인 한계도 있어서 동시녹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아직 풀어나가야할 과제들이 남았다고는 생각하지만 현-로파멜에서는 동시녹음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문제들을 어느 정도는 해결을 했다고 생각해요. 해답은 20년전 미국 워싱턴주 친구네 집 지하에서 4트랙 카세트로 녹음하던 저의 과거 경험에서도 찾을 수 있었고, 초기 비틀즈 녹음과정을 공부하면서도 좋은 소스들을 많이 건졌습니다.

룸 스필과 블리드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

일단 저는 룸-스필과 블리드에 대해 꽤 유연하게 생각하면서부터 동시녹음에 대한 접근을 달리 할 수 있었습니다. 스필 (넘치다 라는 뜻) 은 말 그대로 소리가 넘쳐서 다른 마이크로 흘러들어가는 상황에 대한 표현인데요. 블리드 (피가 흘르다 라는 뜻) 도 마찬가지고요. 이를테면 기타 앰프 소리가 드럼 오버헤드 마이크로 흘러들어가거나 하는 상황들이 모두 스필 혹은 블리드 되었다 라고 표현 할 수 있겠습니다.

수음되는 악기별 소리들을 완벽하게 분리해내야만 한다는 강박이 있었어요. 하지만 초기 비틀즈 녹음과정이나 이후 애비로드에서 녹음하는 과정들에 대해 공부할 수록, 당시 엔지니어들은 이 룸-스필이나 블리드를 적극 활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장비나 기술의 제한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소리들을 마지못해 써야했던건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런 룸 스필 이나 블리드 된 소리를 잘 쓰려는 노력에서 내가 좋아했던 녹음의, 소리의 뉘앙스가 생겨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Boulevard Recording 스튜디오 (불레바드 레코딩) 의 Clay Blair 엔지니어는 우리 세대 엔지니어 중에서는 가장 비틀즈 레코딩 테크닉을 많이 알고 구현할 줄 아는 엔지니어가 아닌가 싶은데요. 그가 설명한 영상 중에 한 장면을 보면,

한마디로, 룸 스필을 그냥 와장창 가져다 쓸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고, 그것에 개의치 않았다. 라고 정리가 될 것 같아요. 이건 비틀즈 초기때 인데, 비틀즈 후기 녹음에서도 기타 앰프를 일부로 드럼쪽을 향하게 해서 드럼 마이크에서 리듬기타가 같이 타고 들어가게 한다거나 하는 방식들을 쓴 경우에 대해서도 자료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패브릭 스크린 / 어쿠스틱 월

넓은, 그리고 완전히 오픈 된 공간이라면 룸 스필 량을 조절하기가 조금 수월할 것 같아요. 아주 쉬운 개념이죠. 드럼 마이크에 스필되어 들어가는 기타 소리가 좀 크다 싶으면 기타 앰프를 저만치 멀리다가 놓으면 되니깐. 그런데 제한된 공간에서는 소리의 근원지를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 한계가 있으니 그 룸 스필의 량을 최소화 하기 위해 무빙-사운드 패널이나 어쿠스틱 월 을 사용하는 경우가 이전 녹음 장면들에서 자주 목격되었습니다. 사진을 한번 볼게요

 
 

패브릭 스크린, 사운드 패널 (스탠드형), 어쿠스틱 월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고, 이것을 따로 제품으로 판매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반 사무실용 칸막이를 쓰는 경우도 봤고 직접 제작해서 쓰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두께에 따라 다양한 제품을 봤는데 그 효과에 대해서는 제가 비교-분석해 본적은 없어요.

 
 

일전에 연남동 녹음실을 운영할때는 비슷하게 제작을 해서 써보기도 했습니다. 어떤 녹음실의 녹음 환경을 보면 꽤 잘 만든 공간인데도 위 우측 사진 처럼 패널을 한바퀴 돌려서 녹음 받는 것을 봤거든요. 아마 반사음이나 이런 것에 대한 더 정교한 녹음을 위해 그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게 정확하게 측정을 하고 해야하는건지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이런 어쿠스틱 월 / 사운드 패널을 썼을 때 뭔가 텁텁하고 막힌 느낌이 들어서 (어쩌면 싸이코어쿠스틱 적으로.. 심리적으로 그럴지도요) 소리의 분리가 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이것을 써야할 이유를 잘 찾을 수 없었습니다. 만약 룸의 벽 재질이 음향학적으로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면 디퓨저의 목적으로 큰 월을 만들어서 쓸 수는 있을 것 같긴 한데, 일단 이런 용도로는 저는 안 쓸 것 같습니다.

동시녹음에서 소리의 분리가 목적이라면 저도 뭔가는 써야 할 것 같았는데, 위와 같은 월 재질은 좀 부담스러웠고 (공간이나 분리의 정도가) 그래서 다른 방법을 모색했어요. Sunset Sound Recording studio (선셋 사운드 레코딩 스튜디오) 드럼 녹음 하는 과정을 보니 조금더 로우파이한 방식으로 녹음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프린스 가 애용했던 녹음실에서 썼던 방식이니 의심하지 않았지요.

 
 

블랭킷 (이불) 의 두께나 재질에도 영향이 있겠지만 의외로 좋았습니다. 월을 쓸때처럼 텁텁하게 막히는 느낌도 아니지만 적당히 분리도 되면서 다른 악기소리가 미세하게 흘러들어가서 제가 원했던 정도의 동시감? 동시녹음의 뉘앙스가 생긴다고 생각했어요.

여러 재질의 블랭킷을 테스트 해봤습니다. 얇은 천, 담요, 솜이불, 차렵이불 등. 이걸 뭐 매트랩 돌려가면서 정확히 측정한건 아니고요. 합주룸 안에서의 느낌이 유지되면서 녹음상에서 과도하게 스필되지 않고 하지만 적당히 서로서로 간섭하는 느낌을 찾은건데요.

다음과 같은 규칙으로 세팅하니 우리 녹음실 환경에서는 좋았던 것 같아요.

동시녹음때 킥

[1.1] 킥 드럼은 좀 더 잘 분리시키자

[1.2] 그러기 위해서 조금 더 두꺼운 이불을 쓰자

[1.3] 만약 그것이 너무 드라이 한 느낌이라면 끝에를 약간 열어서 숨 쉴 구멍을 조금은 만들자

[1.4] 그래도 답답한 느낌이라면 아예 이불을 빼고, 대신 킥-인 마이크를 더 안쪽으러 넣고, 킥 아웃 마이크는 패드를 -20dB까지 쓰자.

[1.5] 이불은 차렵이불이 딱 좋다

동시녹음때 기타앰프

[2.1] 기타 앰프끼리는 서로 마주보게 두지 말고 어긋나게 위치시키자

[2.2] 기타 앰프가 드럼쪽을 바라보게 되는건 상관없는데 기왕이면 리듬기타가 드럼을 바라보는 것은 오케이, 리드 기타는 드럼을 바라보지 말자

[2.3] 기타 앰프는 소리가 새어 들어오는 것을 걱정하기보다는 잘 새어나가게 - 다른 악기 마이크로 잘 스필이 되는 것을 생각하자 - 이 이유는 어짜피 기타앰프 마이크는 다이나믹인데다가 클로즈 마이크 상태이니 어떻게 해도 유달리 스필되는 경우는 잘 없다

[2.4] 기타 앰프가 2개 이상이면 하나는 스탠드로 위를 보게 하고, 하나는 바닥 쪽에 위치해도 좋더라

[2.5] 패브릭 스크린으로는 가벼운 재질의 담요 정도가 좋은듯

동시녹음때 오버헤드

[3.1] 컨덴서 쓰지말고 리본 마이크로 가자 - 컨덴서가 과하고, 리본을 평소 오버헤드 위치보다 조금 낮게 가면 적절한 스필과 드럼 전체를 감싸는 소리에 대한 밸런스를 찾을 수 있다

[3.2] 오버헤드 로우 컷 안해도 된다 (트랙킹 녹음시에는 로우컷을 하는 편임)

[3.3] 드럼 정면을 좀 막으면 심벌이 우후죽순으로 퍼져가는 것을 좀 막을 수 있다. 약간 두꺼운 재질의 블랭킷이 좋았고 바스락 거리는 소리만 없다면 침낭재질이 좋았다

동시녹음때 베이스

[4.1] 아쉽지만 앰프에서 나오는 소리는 모니터로 쓰고, 디아이 쓰루로 드라이 소스를 받는것에 주력하자

[4.2] 만약, 자본이 된다면 C12 같은 마이크를 써서 패턴 조정하고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천만원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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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실험끝에 현재 저희 녹음실에서 동시녹음시 모습은 다음과 같습니다. 드러머 위치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드럼 정면에 스크린을 설치하기 전 모습닙니다. 킥을 덮은 이불은 킥을 칠때 움직이면서 마이크를 건드리거나 하지 말라고 5킬로 원반으로 양쪽 얹어 고정했더니 퍼펙트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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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편

동시녹음은 원하는데, 스필은 원치 않는 경우도 있을 것 같아요. 만약 다음 사진들과 같이 완벽히 분리되고 독립적으로 운영이 가능한 멀티 레코딩 스튜디오라면 그 구현이 가능할텐데요. 1번 방에는 베이스가, 2번 방에는 기타가 그리고 라이브룸에서는 드럼 녹음을 진행한다면, 스필 걱정도 없고 유리창을 통해 연주자끼리 확인도 가능할 것 같아요. (국내에도 꽤 잘 되어있는 분리 독립형 멀티 레코딩 스튜디오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이름이 기억이 안나요 동료 뮤지션 인스타그램에서 봤는데 ㅠㅠ)

아쉽게도 우리 녹음실은 저렇게까지 구현이 되어 있지는 않아요. 하지만 유리창이 있는 보컬 부스가 있어서 그 곳에서 앰프 혹은 다른 악기 하나를 꽤 완벽하게 분리시켜 낼 수 있고, 완전히 마주 보고 까지는 아니어도 근접한 분리형 동시녹음도 가능한 편입니다. 요 부분은 제가 나중에 저희 녹음실 도면과 함께 예로 한번 올려보도록 할게요.